[천자 칼럼] 잘못된 수사

입력 2018-12-12 18:19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국내 4대 방위산업체 중 한 곳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수사에 시달린다. 작년에도 대규모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몇몇 개인 비리 외에는 별다른 혐의가 없다는 게 밝혀졌다. 지난 4년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8대 방위산업 비리’ 사건의 무죄율이 50%나 된다. 방산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34명 중 17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방위산업은 날개 없이 추락했다. 방산 수출을 견인해 온 KAI의 지난해 수출은 전년 대비 83% 급감했다. 매출이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2089억원의 영업손실까지 입었다. 세계 100대 방산기업 순위에서는 1년 전 50위에서 98위로 48계단 떨어졌다. 고등훈련기 T-50 수주 차질 등 후유증까지 겪고 있다.

부실기업 인수 등 배임 혐의로 기소된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과 이석채 전 KT 회장, 민영진 전 KT&G 사장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석채 전 KT 회장은 “4년간 34차례 재판에 출석하며 수억원의 변호사 비용을 쓰는 등 개인적인 고통도 컸지만 수사 여파로 물거품된 KT의 도전 사업들이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 잡듯이 뒤진 사건들이 잇달아 무죄로 판명나면서 표적수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검찰 출신 임수빈 변호사의 논문에 따르면 표적수사는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표적수사란 기소할 사건보다 대상자를 먼저 선정한 뒤 집중적으로 수사하는 것을 말한다. 검사가 스스로 표적을 정한 ‘독자적 표적수사’와 상부기관 명령에 따른 ‘하명수사’, 개인의 부탁을 받은 ‘청탁수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검찰의 표적수사는 짜맞추기식의 억지수사 등 무리수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검사가 원하는 증거를 찾지 못하면 사건과 무관한 ‘별건수사’로 압박하거나 회유·협박을 동원하기도 한다. 기업 경영자들에게는 적용 범위조차 모호한 배임죄를 갖다붙여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 투자’까지 불법으로 몰아간다. 지난해 검사의 과오로 인해 무죄판결이 난 사건이 1115건에 이른다. 억울하게 구금됐다 풀려난 사람에게 지급하는 형사보상금도 360억원을 넘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과거 수사에서 인권 보장 등이 미진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수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도 했다. 올 7월에는 대검찰청에 인권부를 신설했다. 그러나 무리한 수사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계속되는데도 검찰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상세히 점검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래서야 어떻게 ‘권력 갑질’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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